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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산과 바다의 서사: <헤어질 결심>의 미학적 깊이와 결심의 무게

by 랩인턴 중인 학부생 땅콩 2023. 11. 11.

 

   결심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단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사전에서는 이를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 또는 그런 마음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를 통해 우리는 결심이 단순한 생각의 순간을 넘어선, 행동으로 옮기기 전의 중대한 정신적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결심은 미지의 결과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을 의미하며, 때로는 그 결말이 불투명할지라도 전진을 감행하는 용기의 발현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이러한 결심의 무게를 영화적 언어로 풀어내며, 단 한 번의 관람으로는 충분히 감상할 수 없는 깊이와 다층성을 지닌 작품이다. 각 장면은 마치 섬세한 시계의 톱니처럼 서로 맞물려, 관객이 여러 번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감정의 층을 발견하게 한다. 본문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시각적 서사와 감독의 창의적 비전을 결합하여, 관객에게 예술적 가치와 깊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각본집과 제작진의 인터뷰를 참조하여, 영화 제작의 의도와 과정을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내면적 깊이를 탐구하고자 한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바다라는 부제를 통해 이 영화를 1, 2부로나누고 싶었음을 밝혔다. 그만큼 산과 바다라는 키워드는 작품에서 강력한 상징으로 역할한다. 영화의 첫 번째 배경도 부산(釜山)이다. 서래가 물려받은 것으로 나오는 호미산,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떨어져 죽은 구소산, 해준이 맡은 다른 사건의 용의자 홍산오(박정민)의 이름과 얼굴의 한자 문신[1],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건물 옥상, 서래가 해준의 녹음본을 지우는 산사(山寺)까지. 부산은 항구도시이지만 여기서는 산의 존재를 내포하고 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씬들에서는, 산과 고도를 이용해 해준과 서래 간 높아지는 관계적 긴장감을 묘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의 전반부는 쇼트사이즈(shot size)와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이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기도수가 사망한 현장과 출동한 경찰들의 모습은 어두운 풀밭 위 불빛을 버즈아이뷰쇼트로 시작해서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전체적인 사건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이는 해준과 서래의 시작을 조명한다. 또한 해준과 정안의 정사 장면에서 해진의 멍한 표정과 사극을 보는 서래의 교차편집을 통해 해준의 정신적 불륜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부의 끝자락에서 해준이 붕괴하면서 이는 곧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무너진다는 것는 필연적으로 높이를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후반부는 전반부와 대조되는 물의 이미지가 가득한 이포에서 전개된다. 푸른 색의 펜타닐 네 정, 서래의 두 번째 남편 호신은 수영장에 빠져 죽고, 사건 직후 바닷가에서 해준을 기다리는 서래가 이를 잘 나타낸다. 이때, 이포가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서해와 동해의 특성을 조합한 가상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이포의 바다는 동해의 해변과 모래에 일몰과 조수 간만의 차이를 조합한 장소다. 안개가 많고 습한, 의사가 제안한 런치 전 일광욕은 어림도 없을 정도로 해가 나는 날이 많지 않은 지역이다. 그리고 이를 해준과 정안의 베드신에서 해준이 곰팡이를 주시하는 장면, 경찰서에서 나무에 곰팡이가 슳은 느낌 등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해변가에 서래가 만들어낸 모래산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헤어질 결심>은 새벽 구소산의 비금봉 아래부터 이포의 저녁 바닷가까지 154개의 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많은 관객들이 다음의 씬을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꼽을 것이다. 서래는 해질 녘 모래밭에 자신을 묻을 만큼 깊은 구덩이를 파 내려간다. 그리고 그녀가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 파낸 만큼 쌓인 모래산이 만조에 따라 점점 무너져내린다. 무너진 해준의 높이를 되돌리기 위해서,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서래는 스스로 붕괴하여 깊이를 만든다. 서래라는 산이 죽어 해준이라는 바다에 묻힌 것이다. 결국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평생 잊지 못하도록, 자신을 해준의 가슴 속에 묻으며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된다. 이때, 서래가 사용한 양동이는 전반부에서 고양이가 물어다 준 까마귀를 묻을 때 사용했던 것과 같다. 롱 테이크(long take)로 촬영된 황량한 해변의 익스트림 롱 쇼트(extreme long shot)는 파도 소리와 겹쳐지며 서래의 죽음으로 인한 기약없는 이별을 나타낸다.

 

   이처럼 <헤어질 결심>에서 보여주는 미장센과 몽타주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고 할 수 있다. 미장센(Mise-en-scène)은 불어로 ‘putting in the scene’을 의미한다. 미장센은 연출자가 만들어낸, 프레임에 잡히는 모든 요소를 말한다. 한 씬 속에 나오는 조명, 의상, 세트, 카메라 움직임 등을 모두 포함한다. 원초적인 색의 사용도 눈여겨 볼 미장센 중 하나이다. 산은 초록, 바다는 푸른 색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서래의 색은 녹색으로 보였다 파랑으로 보였다 하는청록색으로 대표된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여기에는 서래가 가져온 <산해경>이 산과 바다로 이루어진 우주를 미하기 때문에 파랑과 초록 사이를 오가며 색을 구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반부 서래의 집은 파도같은 형태를 띠지만 멀리서 보면 산의 능선 같은 초록 색감의 푸른 벽지가 발라져 있다. 서래의 옷과 벽지 외에도 청록색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한다. 서래가 해준의 방에서 당신은 해파리예요하고 불을 껐을 때 청록의 빛이 번진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 수완(고경표)가 행패를 부릴 때 해준 뒤쪽의 창에서 청록의 빛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는 산을 1, 바다를 2부로 나누었다는 앞의 내용에 의하면 두 주인공의 상승과 하강이라는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단서이며, 불가항력적인 추락을 예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서래의 단일한 살해 단서가 될 수 있는 휴대폰을 깊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요라고 하는 해준의 대사는 둘의 사랑이 추락하고, 관계가 단절되는 계기가 된다.

 

   이외에도 색은 인물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미적 장치이다. 서래는 해준과의 마음이 싹틀 때 즈음엔 노란색 셔츠를, 호신의 채무자 철성에게 구타당할 때는 붉은색 옷을 입는다. 이외에도 빨간 석류, 이포에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식을 듣는 해준이 생선 배를 가르면서 나오는 붉은 피가 시각적인 임팩트를 주기도 한다. 이는 공감각적 심상을 극대화하면서 살해된 호신의 피로 붉어진 수영장을 담은 쇼트로 이어진다.

 

   한편 사소한 소품이 주인공들의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 서래와 해준은 가장 먼 거리에서 심문을 시작하지만, 저녁을 먹을 때가 되면 휴대폰 화면을 같이 들여다볼 정도로 붙어 앉는다. 촬영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장면은 원래보다 더 폭이 좁은 테이블을 제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서래와 해준이 시마스시를 먹는 장면에서, 수저받침이 산과 바다다. 또한 간장 물고기 모양 간장 튜브라서 물고기들이 바다로 향하게 둔 채 인서트를 찍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서래와 해준이 이제 바다로 갈 것이라는 암시다.

   또 다른 재미있는 요소는 음식이다. 해준은 잠은 부족해도 한 끼 한 끼를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정안에게 따뜻한 음식을 먹이려고 졸음 운전까지 해가며 부산에서 이포를 왕복한다.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때우는 서래는 그런 해준에게 눈에 밟힐 수밖에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해준은 서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단일한 중국 음식인 볶음밥을 해준다. 아이스크림은 서래로 인해 아이스크림화된, 자부심있는 경찰이었지만 서래로 인해 녹아내리는 해준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포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란히 놓인 놓인 둘의 손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해준의 결혼반지와 한 짝 씩 채워져있는 수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금기의 사랑을 표현한다.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에서 제작자들의 고민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사운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을 조명하지만 감정적인 음악은 최소화한 덕분에, 그들의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감상 후 여운이 남는 노래는 단연 정훈희의 <안개>. 안개가 시야를 흐리는 요소인 것처럼, <안개>는 새벽의 도로에서, 해질 녘 해안가에서, 밤 바다에서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심경과 불확실한 미래를 나타낸다. 또한 작중 세 번 등장한 말러의 교향곡 54악장 <아다지에토>는 비극적 멜로드라마를 대표하는 곡으로, 해준이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 등 중요 부분에서 등장하며 영화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형식적 요소들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독특함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의 세심한 미장센과 몽타주의 사용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영화의 내러티브를 강화하고, 캐릭터들의 심리적 상태와 그들 사이의 관계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산과 바다라는 자연 요소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과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색상과 소품의 사용은 감정의 미묘한 변화와 사건의 전개를 예고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이러한 형식적 요소들은 단순히 배경이나 장식이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해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객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영화의 테마와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은 이러한 형식적 요소들이 어떻게 영화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결론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각각의 형식적 요소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해석과 감상에 깊이를 더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관람을 넘어, 박찬욱 감독의 의도와 인물들의 감정을 체험하게 만들며, 그로 인해 영화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박찬욱, 정서경. (2022). 『헤어질 결심 각본』. 서울: 을유문화사.

이정화. (2023). 서스펜스 영화에 나타난 미장센: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히치콕의 영화 비교. 신영어영문학, 84, 85-105.

김수영. (2022, July 7). '헤어질 결심' 김지용 촬영감독 "시점숏을 통해 훔쳐본다는, 은밀한 느낌을 더했다". 씨네21.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490

정재현. (2022, July 7). '헤어질 결심' 류성희 미술감독 "고유의 파장을 지닌 소리와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며". 씨네21.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491

이우빈. (2022, July 7). '헤어질 결심' 조영욱 음악감독 "멜로드라마의 고전적 음악 공식은 일부러 따르지 않았다". 씨네21.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0494

이주연. (n.d.). 영화헤어질 결심속 술과 음식. Metizen. http://metizen.co.kr/

서곡숙. (2023, May 2).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헤어질 결심> ― 이루어질 수 없는 금기의 사랑과 결심의 딜레마. 르몽드디플로마티크.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69

박현주. (2022, August 15). The mystery of love. Allure. https://www.allurekorea.com/2022/08/15/the-mystery-of-love/

이현동. (2022, July 5). ‘헤어질 결심의심의 몽타주, 그 미학의 결계. CoAR. https://www.ccoart.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5



[1]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대사가 있다. 홍산오 눈 주위의 문신은 사람 인()과 두 이(). 두 한자를 합치면 어질 인()이다.

 


본문은 2023 가을학기 서울대학교 '영상예술의 이해' 중간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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